성결 운동의 동맹자?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왜 성결그룹의 그리스도인이 그의 한 오후를 카페에 앉아 대부분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들어 보지 못한 스위스 가톨릭 신학자의 글을 읽어야 할까?
먼저 명백한 사실 하나를 인정하자. 모든 신학자들이 우리의 정신적, 영적 에너지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 교리주의자들인 카톨릭 신학자들과 강성 개혁주의 신학자들처럼 성결 신학의 줄기에 반대되는 방식으로 그 영성이 서 있는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 사상가들이 있다. 존 웨슬리 자신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마음과 삶의 거룩함에 대한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성결, 완전함, 거룩함의 적극적 추구를 조용히 훼손하는 신학이라고 경고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기독교 전통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세를 갖도록 격려했지만, 그는 또한 일부 신학들이 다른 신학들보다 성결을 더 잘 육성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진리의 다른 면에 위험성이 있다. 우리가 이러한 주의를 구체적으로 강고하게 형성하도록 그냥 두면, 즉 “다른 전통”은 항상 “위험성”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결국 신중하고 분별력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된다(데살로니가전서 5:19-21 참조). 우리는 결국 종파주의자로 끝나게 되며, 종파적 신앙은 다른 방식으로 풍부하게 될 수 있는 수세기 동안의 기도와 성찰로 부터 단절되어 있는 영양실조적 신앙이다.
그렇다면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는 어디에 놓여있는가? 그는 성결을 약화시키는 신학자인가, 아니면 육성시키는 신학자인가? 그는 틀림없이 두 번째 범주에 속하며, 사실 20세기 웨슬리안-성결 신학의 가장 강력한 동맹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발타사르는 누구인가?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1905-1988)는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나 로마 가톨릭교회의 추기경으로의 공식 취임하기 이틀 전에 바젤에서 사망했다. 그의 생애 동안 그는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가톨릭 신학자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 발타사르의 장례식에서 앙리 드 뤼박은 조사를 통해 “이 사람은 아마도 자기 시대에 있어서 가장 완숙한 사람이었으며, 그리고 만약 어떤 이가 어디에서 기독교 문화를 발견하려 한다면, 이 사람에게서 그것을 발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발타사르는 처음에는 독일 문학과 철학을 배웠으며 그 후에 예수회에 들어갔고, 1936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에리히 프르지와라와 앙리 드 뤼박이 그의 신학적 스타일을 깊이 형성시킨 두 신학 멘토들이었다. 특히 드 뤼박은 이 젊은 신학자에게 교회 교부들, 특히 이레네우스, 오리겐, 니사의 그레고리, 막시무스 고백자들을 다시 볼 수 있도록 인도했다. 드 뤼박과 발타사르 모두 원자료로의 회귀 운동의 핵심 인물들이었으며, 이는 “근원적 자료들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원자료 회귀 신학자들은 교회를 갱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뒤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교부들이 말한 것이나 우리의 경우 웨슬리가 말한 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항상 신학과 영성과 문화를 통합해 왔던 기독교 전통의 가장 위대한 증인들의 살아있는 정신을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근원으로부터 새롭게 생각되지 않고 단순히 전해지는 진리는,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발타사르, 《Razing the BAstions 대요대를 파괴하는》
20세기 대부분의 주요 가톨릭 신학자들과 달리 발타사르는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에 그의 경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1945년 이후로 바젤에 성 요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그의 삶을 바쳤는데, 이 공동체는 그가 카톨릭 교회로 이끈 스위스의 의사이자 신비주의자인 아드리엔느 폰 슈피어와 함께 세운 것이었다. 이 공동체는 종종 세속적인 평신도 기관이라고 불린다. 평신도들이나 교구 사제들이 될 수 있는 그 공동체의 회원들은 사회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사회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로 맹세했다. 발타사르의 신학과 영성은 세상 속의 공동체 안에서 생성되었으며, 폰 슈파이어의 영적 경험이 발타사르의 신학 내용을 형성하는데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형성했는지에 대해 지나치게 말할 수 없다.
발타사르가 20세기 주요 개신교 신학자인 칼 바르트와 함께 한 관계는 그의 신학에 마지막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언급할 가치가 있다. 발타사르와 바르트는 친구이자 대화 파트너였다. 실제로 1968년에 있었던 바르트의 마지막 대중 강연은 실제로 발타사르와 공동으로 발표된 것이었다. 발타사르는 카톨릭측에서 칼 바르트와 함께 한 가장 진지한 교제를 가졌으며 이를 기록했다. 그는 《칼 바르트의 신학》(1951)에서 바르트의 대규모 《교회 교의학》을 읽으며, 자신의 가톨릭적 질문들을 던지면서도 강한 동질감을 표현했다. 발타사르는 또한 역설적이게도 마르틴 루터와도 함께 했다. 특히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우리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극적 행동에 대한 그의 성찰에 넣었다.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발타사르의 저작들을 제목별로 나열한다면, 그 목록은 약 100페이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가 그의 저작 경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아마 하루에 70~80페이지 분량의 글을 썼을 것이라고 나는 추론했다.
신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주로 16권으로 이루어진 3부작인 《The Glory of the Lord 주님의 영광》(아름다움에 대해), 《Theo-Drama 신극》(선에 대해), 《Theo-Logic 신학적 이성》(진리에 대해)으로부터 나왔다. 이 3부작의 구조는 초월성에 대한 전통적인 순서를 뒤바꾸어, 이성적인것 보다는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 신학적 성찰을 위한 출발점이 되도록 했다.
발타사르는 또한 긴 선반에 놓일 수 있는 짧은 책들을 집필했는데, 이는 일반 독자들에게 그의 사상의 핵심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의 신학적 미학에 대한 소개인 《Love Alone Is Credible 사랑만이 신뢰할만하다》와, 교리가 어떻게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그의 명상인 《Prayer 기도》, 그리고 그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경건한 진입점이 될 수 있는 《Heart of the World 세상의 심장》으로 시작할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에라스모 리브-메리카키스는 《세상의 심장》이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다음에 한 자리를 차지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영광, 드라마, 진리로서의 성결
성결 그리스도인들이 발타사르를 읽어야 하는 주요 이유는 그의 신학이 그 핵심에 있어 성결 신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이 때로는 성결을 하나의 도덕성으로 붕괴시킬 때에, 발타사르는 성결의 다차원적 측면을 개발했다. 그는 그의 3부작의 유형인 《아름다움》《선》《진리》의 3중 패턴을 주장하는데, 이 패턴은 각각 하나님 자신의 무한한 성결의 신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The Glory of the Lord 주님의 영광》은 성결이 그 안에서 신성한 아름다움과 영광을 드러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발타사르에게 신성한 영광은 결코 형태없는 신비주의나 성스러운 다름, 즉 세상으로부터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이 아니다. 영광에는 형태가 있다. 즉, 우리는 성경안에서, 성인들에게서, 가장 강력하게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좀 더 일반적인 창조의 형태들인 예술이나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서와 같이 피조물의 광범위한 형태들을 통해 거룩을 실제로 볼 수 있다. 성결이 먼저 아름다운 것이라면, 또는 바라볼 가치가 있는 형태를 가진 어떤 것이라면, 성화는 피조물을 그것으로 끌어당기는 신적 아름다움의 과정이다.
“아름다움은 우리의 첫 번째 단어가 될 것이다. 아름다움은 사고적 지성이 감히 접근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며, 이는 그것이 진리와 선이라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그 관계라는 이중 별자리 주위에서 춤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이 죽음의 시대에도, 창조세계의 최초적이고 원시적이며 종말론적인 영화로움을 빛나게 드러내는 것으로, 구속받은 인간은 그 안에서 창조세계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시는 그 일에 참여하도록 허락되었다." —《주님의 영광》, 1권.
《Theo-Drama 신극》은 성결이 드라마와 같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먼저 성육신하신 주님의 구체적이고 갈등적이며 십자가적인 형태의 삶으로 수행되었으며, 그 다음에는 동일한 드라마에 휩쓸려 들어가는 성도들에게서 수행되는데, 각 성도들은 역사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각자 독특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 점에서 성결은 주로 개인적인 경건이라기 보다는 교회와 세상에서 적극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의 영역 안에서 교리들이 실증될 수 있고 실제로 보여지고있다면,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또한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완전한 증거가 된다. 기독교의 실존적 투명성에서 기독교는 그 자체와 세계 모두에 대해 이해될 수 있게 되고 그 자체가 영적 투명성을 나타낸다. 성도는 기독교에 대한 변증이 된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서 살아가도록 허용하기 때문에 거룩하다. 그리고 그가 ‘영광으로 나타내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The Glory of the Lord”, 1권.
마지막으로 '신적 이성'은 우리에게 성결이 진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논리와 문법을 수행한다. 그리스도 자신이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는 문법이 되셨는데, 이는 성화가 의지와 애정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즉, 성결은 그리스도인들의 사유방식과 우리가 생각하고 세상에 참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로마서 12:2 참조).
이 세 가지 차원을 하나로 묶으면, 당신은 바라보며, 연기하고, 생각하는 어떤 것으로서의 성결을 얻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아름답고 선하며 진실한 것을 나타내시는 한 분 주님 안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의 거룩함은 너무나 광대해서 성도들—거룩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형태로 신성한 영광을 증거하도록 초대받는다.
웨슬리안-성결 전통이 그 중심에 성결을 초점에 둔 유일한 전통은 아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 전통의 독특함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와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축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핵심 파트너로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가톨릭이며, 사도적인” 전통 안에 우리 자신을 자리 잡도록 허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