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진 것이 되어지다.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진 것이 되어지다.

우리의 삶을 통틀어 우리 인간은 다음과 같은 실존적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왜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것들은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본성, 그리고 우리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 힘쓰며 던지는 질문들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6-27)라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던지는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위의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요한 웨슬리는 이마고 데이(하나님의 형상)를 세 가지 방법으로 설명했다. 이 방법들을 함께 고려할 때 우리는 신적 형상이 무엇을 포함하는지에 대해서 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며, 또한 이러한 창조주의 설계에 비추어 봄으로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웨슬레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세 가지 형태는 자연적, 정치적, 도덕적 형상이다. 첫 번째 방식은 이 형상이 이해력과, 의지, 자유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적 형상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세계에 대한 청지기직과 책임성을 가지도록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것은 위임받은 권위를 포함하는데, 그러기에 그 권위에 대해 창조주를 향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세 번째 형태는 도덕적 형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속해서 받고 그 받은 것을 전달하는 다리로서의 통로가 되는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장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다.  도덕적 형상은 거룩함, 정의, 긍휼, 사랑으로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이마고 데이에 대한 웨슬리의 이해는 그의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그의 신학적 이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창조에 대한 말씀에 따르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설계는 그들의 존재 이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마고 데이는 단순히 인간의 본질적 본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섬김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부르심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은 인간이 창조주와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이며, 창조세계의 청지기가 되고(창세기 1:28), 세상에서 그 분의 대표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적 차원을 포함하는데,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정함으로 그들에게 존엄성과 구속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체성(우리가 누구인지)과 목적(우리가 왜 존재하는지)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의 의미와 소명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은 바로 창조주에 대한 순종이 그 분과의 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부분이며, 그 의존의 관계로부터 인간은 이웃들 그리고 창조물들과의 공동체적 관계를 이루며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성경적으로 창세기 3장에 따르면, 우리의 첫 번째 조상의 불순종의 시작으로 말미암아 이마고 데이는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죄는 에덴에서 창조된 인간의 도덕적 형상에 영향을 미쳤고, 그들을 그들의 이기심과 개인적 만족으로 돌아서게 했고, 하나님을 반영하는 원래의 목적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 손상된 그 형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믿음이라는 놀라운 일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는 소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마고 데이의 신성한 설계와 그 회복이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창조를 향한 하나님의 설계의 목적이 성공, 개인적 성장, 또는 생산성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까?

성경 본문은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한 우리의 반복적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음으로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중에서 특히 몇 가지를 강조해야 한다. 그 가운데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는 것의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 보낸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36).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 예배를 통해, 예배가 단순히 의식적이고 일시적인 순간이 아닌 일상의 모든 영역에 스며드는 삶의 방식으로 될 때 우리는 존재의 목적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마고 데이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이다. 이는 우리가 인간 삶의 모든 측면에서 예배자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의미하며, 이것은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이라는 이분법적 분리를 깨뜨린다. 우리는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우리의 믿음뿐 아니라 가족, 일, 관계 등을 포함하여 우리의 모든 존재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0:31) 끊임없이 예배하는 삶의 방식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섬김이라는 지속적인 청지기직으로 이어지게 할 것이다.

우리의 목적을 정의하고 교회의 사명을 뒷받침하는 이마고 데이를 통해 발견하는 또 다른 측면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그리스도의 회복의 사역을 구체화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한다. “곧 하나님께서...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고린도후서 5:19-20). 복음의 선포란 죄의 재앙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풍요로우며, 자유롭고, 충분한 은혜를 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그 문이 열리고, 창조주와의 교제의 회복을 위한 초대가 확장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존재 이유이다. 이것이 절망과 의미의 상실 가운데 있는 황폐한 세상에서 기쁨과 소망으로 나누는 구원의 좋은 소식이다!

호르헤 율카는 아르헨티나 필라르에 있는 남미 남부 콘 나사렛 신학교의 학장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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