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여전히 죄이다
<해럴드 오브 홀히니스> 1987년 8월 15일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한 설명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일탈 행위가 그저 “부적절한” 행동, “판단”의 실수, 또는 “유감스러운” 결정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행위자가 아마도 의도적이고 결정적인 선택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법을 심각하게 어긴 경우가 많다. 성경은 이것을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 바로 “죄”이다.
현실을 미화하여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이 경향은 한 주요 뉴스 잡지 칼럼니스트로 하여금 “왜 이제는 아무것도 ‘잘못’이 아니게 되었는가?”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만들었다. 그녀의 언급은 유명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메닝거 박사의 베스트셀러 <죄는 어디로 갔는가?> 의 제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사회의 흐름은 교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목회자들은 이러한 침입을 경계해야 하며, 교인들 역시 도덕적 기준에 대한 이러한 무기력한 태도에 굴복하거나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구속하며 사랑하는 교제가 결코 타협하거나 묵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고린도 교회에 문제를 지적했던 사도 바울의 우려나,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를 죄로 인식하고 그 결과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각 경우에서 요구된 것은 죄를 짓고 있는 자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었다.
신앙을 버린 자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만 인정하고, 교회에서 동조적인 태도를 발견하는 것은 하나의 위안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반응은 그 교회와 그 지도자들을 약하고 무기력한 사역으로 이어지도록 만들 것이다.
자신의 삶 속에 죄가 있음을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평안, 용서, 회복으로 가는 길은 그러한 인정과 더불어 행위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이어서 다시는 그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구속이다. 이 목적을 위해 우리의 사역과 교제에 헌신하자. 그렇게 할 때, 교회는 사회의 경향에 굴복하지 않으며, 실로 강력하고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