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짐과 소속됨

깨어짐과 소속됨

하나님은 내가 16세 였을 때 참가했던 30시간 금식 청소년 행사를 통해 내 삶을 놀랍게 변화시키셨다. 문제 가정 출신으로 마약 중독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을 때, 나는 하나님이나 교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나는 무언가 더 많은 것을 찾고 있었다. 친구들의 기도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나는 내 삶을 예수님께 드리고 세례를 받았으며 처음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사랑과 지원을 경험했다. 그 직후, 청소년 사역 목회자 존과 셀레나 프리먼은 (그들의 두 어린 자녀들과 함께) 나를 그들의 집으로 맞이했으며 나에게 건강하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가족 생활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 주는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을 주었다. 그들의 나를 향한 투자가 내 삶의 궤도를 바꾸었으며, 그 이후로 하나님은 내 육체적 가족도 구원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찬양 목사인 아내와 믿음 안에서 자라는 두 자녀를 주시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몇 년 후, 하나님은 신앙적인 우리 가족을 부르셔서 함께 교회를 세우게 하셨는데, 이 교회의 사명은 내가 십대 시절 그러했던 것처럼 상처받고 잊혀진 사람들이 소속됨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한 것이었다.

모든 공동체에는 부서진 현실 가운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다른 지역보다 좀 더 눈에 띄게 부서진 것으로 보이는 동네들도 있지만, 부서진 것들이 때로는 그 고통을 감추기 위해 다른 것들, 즉 성공이나, 분주함, 완벽주의, 또는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행복의 모습 등의 가면으로 위장한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러나 이 가면 안으로는 연결과 치유, 그들이 진정으로 알려지고 사랑받을 수 있는 공간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로서 우리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이 일에 참여하는 책임을 받아들일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상처의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을 만남으로 그분의 손과 발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의심할 바 없는 교회에 대한 부르심이지만, 예수님의 길을 본 받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이일다. 예수님은 죄인, 버림받은 자, 걸인, 사회가 종종 간과하거나 거부하거나 판단하는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아버지의 마음을 모범적으로 보이셨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상한 자들, 잊혀진 이들, 이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들에게 미치는것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포용하셨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같은 일을 하도록 부르셨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교회가 스스로를 평가하도록 강요하는 놀라운 본보기가 된다. 이 이야기에서 세 사람이 등장하여 심한 구타를 당해 거의 죽은 채 버려진 한 유대인 사람에게 다가간다(누가복음 10:30–37 참조). 그 세 사람은 제사장,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 그리고 멸시받는 사마리아인으로 구성되었다. 제사장은 그를 보았을 때 그 자리를 완전히 피하여 두 번 보지 않고 길 건너편으로 걸어갔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지나게 되었을 때 그는 더 잘 보기 위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예의를 다했지만, 결국 그 제사장처럼 그냥 지나쳐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 강도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에게 긍휼을 베풀어 그를 돕기 위해 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를 미워했으며, 예수님은 이 비유를 사용해 문화적 편견에 도전하시고 참된 이웃 사랑이 경계를 넘는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이 이야기는 상처받고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라는 부르심이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의 등장 인물중 당신은 누구인가? 자신의 종교적 의무에 너무 집중해서 그의 눈 앞에 보이는 다침 자의 필요를 무시한 제사장과 같은가? 좀 더 다가가 자세히 살펴볼 만큼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너무 위험하다고 결정한 성전 봉사자인가? 또는 동정심을 가지고 그 사람을 돕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한 그 멸시 받은 사마리아인인가?

현실은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그 남자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사실 이 이야기의 인물들이었다. 우리는 가끔 취약하거나 부서졌거나 버림받았고, 그 상처를 가지고 무기력해져서 자비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자신의 삶에 몰두하거나 산만해져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었고, 그러할 때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우리는 또한 사마리아인처럼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고 기꺼이 긍휼과 보살핌을 베풀어 오기도 했다. 이 이야기 속 각 인물의 모습들은 인간의 필요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그리고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살아가야 할 우리의 부르심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교회는 세상에게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환영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그들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교회에 대한 필요는 엄청나며, 비록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문으로 오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주저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환영받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을 만들어, 거기서 그들이 치유를 경험하고 진정으로 그들을 돌보는 공동체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초대 교회는 함께 생활하고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예수님께서 부르신 사역 안에서 연합함으로 이러한 일에 좋은 모델이 되었다. 그 결과는 사람들이 날마다 구원을 받는 것이었다(사도행전 2:47 참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하는 일해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걷고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충실하게 보여주는 데 책임이 있다. 교회가 생각과 행동으로 연합할 때 지역 공동체는 한 번에 한 생명의 회복을 보게 된다. 각 교회와 각 사람이 우리 앞에 있는 그 필요를 매일 같이 충족시킨다면 우리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될까?

믿는 자들이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교회와 세계 가운데서 역사하신다. 나는 또한 수 많은 지역 교회들이 부서진 사람들을 도와 소속을 찾도록 하는 일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동하도록 촉구하실 때 우리는 섬세함과 순종함으로 반응해야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는 요청 받은 것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 주신 그 가족이 나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자 멈추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며, 나는 이에 대해 영원히 감사할 것이다. 그 보답으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완전히 부숴지지는 않았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그들의 집을 찾을 수 있으며, 거기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헌신했다.

딜런 로빈슨은 더 웰 나사렛교회의 담임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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