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양면성

영적 양면성

해럴드 오브 홀리니스 , 1981 9 15

https://whdl.org/sites/default/files/resource/article/EN_Herald_of_Holiness_1981_v70_n18.pdf?language=en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다. “나의 마음을 하나로 하여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시편 86:11).

 

오늘날 많은 교회 구성원들은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무기력과 권태감의 무의식적인 희생자다. 그들이 그리스도나 교회에 반대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일에 마음과 관심을 두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을 수 있다. 심지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어느 정도 지원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망설임이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너무 많은 경우에,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미묘한 양면성에 사로잡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찬성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한다. 그들이 순간에 느끼는 기분에 따라 교회에 대한 반응이 달라진다. 이러한 마음속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들은 어렵지 않게 추적할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그리스도인의 경험 때문에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이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낮은 동기와 나쁜 욕망의 정복은 그들이 바랐던 만큼 완전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의 개념을 포기하고,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말하기를 택했다. 그들의 성격에는 거인과 성벽 같은 장애물이 있어 결코 극복할 없다는 불신의 슬픈 요소가 남아 있다. 그렇게 하여 빛의 뒤쪽으로 걸으며 복음의 특권의 아래쪽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정복을 제한하는 불신은 또한 그들의 봉사를 약화시켜, 그들이 기꺼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의무들을 쉽게 회피하게 한다. 행동에 대한 명백한 변명은 "나는 깊은 영적 삶을 주장하지 않는다" 것이다. 너무 많은 경우에, 이것은 불성실과 무관심에 대한 그럴듯한 변명이 된다. 이러한 내적 갈등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약간 비판적이 되는 것은 쉽고 심지어 자연스럽다. 남의 결점에 대해 사소한 부분까지 비판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여질 있는 행동이 아니며, 그것은 원인이 밝혀지고 적절히 해결되지 않으면 기독교 삶에 치명적인 질병이다. 판단력은 우리 성격의 고유한 부분이며, 의견이 강한 것은 피할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능력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사랑으로 하든 적대감으로 하든, 하나님과의 관계에 선하거나 악하게 영향을 미친다.

 

어떤 이들은 교회 자체에 실망을 느낀다. 익숙한 불평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로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다.친절하지 않다, 감사하지 않는다, 협력적이지 않다, 사려 깊지 않다, 자유주의적이다, 보수적이다, 율법적이다, 적절하지 않다, 현대적이다, 형식적이다, 죽어 있다 등과 같은 형용사들로 표현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는 필요하지만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로 여겨진다. 헌신적이고 기쁨 가득한 봉사 대신, 무감각과 의무감이 자리 잡는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쉬워진다.

 

사실 우리가 언급한 원인들은 문제의 근원에 있는 실제 문제의 증상에 불과하다. 기본적인 문제는 마음이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스스로 분쟁하는 집마다 서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리고그러므로 눈이 성하면 몸이 빛으로 가득할 것이나, 눈이 나쁘면 몸이 어두움으로 가득하리라 (마태복음 6:22-23) 하셨다. 야고보는 마음을 품은 사람은 모든 일에 불안정하다 상기시킨다. 야곱은 그의 아들 르우벤에게서 이러한 양면성의 해로운 결과를 보고물같이 불안정하여 뛰어나지 못하리라 예언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나뉜 마음에 대해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 내가 선을 행하기를 원하나 내게 악이 함께 있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19-24)라고 말하며 설명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통해 딜레마의 해답을 발견한 것은 그의 후일의 고백내가 하는 가지 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현대 신학자가 말했듯이마음의 순수함은 하나의 의지를 갖는 것이다.” 아마 시편 기자가나의 마음을 하나로 하사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었을 , 자신도 모르게 아주 좋은 기도를 것이리라.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내적 정화 사역을 진심으로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피로 사신 특권이 아니겠는가?

 

물론, 지난 건축 프로그램의 미해결된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인격 갈등은 인간 관계에서 항상 존재할 것이다. 주님의 일을 하는 다른 방법에서 비롯된 의견 차이는 확실히 존재한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에서 어떤 상처는 더욱 예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실망은 찾아올 것이다. 믿음은 시험을 받고 인내가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것임이요.” 폭풍과 시련과 환난 너머로 우리는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본다. 그렇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목적과 나뉘지 않은 충성으로 그분께 우리의 최선을 드릴 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전서 15:57).

 

로버트 스미스Robert L. Smith는 인디애나 오시안에 있는 나사렛 교회의 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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